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쓰 사건 (문단 편집) == 매체에서 == [[기동경찰 패트레이버]]에서 방일한 미국 대통령을 '외압의 마왕'이라고 싫어하면서도 특차 2과가 경호 임무에서 배제되었던 일에 불만을 품던 [[오오타 이사오]]가 바빌론 프로젝트를 시찰하는 미국 대통령을 경호하는 임무를 맡던 도중 대통령을 로케트탄으로 습격하려던 레이버를 발견하자마자 총을 발사하는데 하필 총을 겨눈 방향이 미국 대통령이 탑승한 차량 바로 측면이었고 이에 [[시노하라 아스마]]가 "네가 무슨 쓰다 산조야?!"라며 기겁한다.[* 이 장면에서 [[유우키 마사미]]가 오츠 사건에 대하여 간략한 해설을 곁들였고 '으음, 참 유익한 만화야.'라는 [[자뻑]]은 덤.] [[야스히코 요시카즈]] 화백의 [[하늘의 혈맥]]에서 [[니콜라이 2세]]가 과거를 회상하면서 "일본도의 맛이 매서웠다."는 식으로 잠깐 언급한다.~~사실 세이버지만~~ [[에가와 타츠야]]의 [[러일전쟁 이야기]]에서도 상세히 언급된다. 니콜라이 황태자와 동행했던 요르요스 1세가 묘사되지 않아서 쓰다 산조의 기습 직후 느닷없이 중절모를 쓴 남자가 쓰다를 지팡이로 후려치는 묘한 장면이 되었다. 이후 메이지 덴노가 납치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황태자의 전함을 방문하여 사과를 해서 잘 해결되었다고 묘사되었다. 웹소설 [[조선, 혁명의 시대]]에서 완화군 이선이 이를 이용해 니콜라이 2세의 [[반일]] 감정과 경계를 부추기며 이 사건으로 [[야마가타 아리토모]] 내각이 잠시 실각한다. <[[나는 공산당이 싫어요!]]>에서는 빙콜라이가 이 사건을 빌미로 일본에게 불평등 조약을 강요했고 일본의 근대화에 황색불이 들어왔다. [[굽시니스트]]의 [[본격 한중일 세계사 만화]]에는 오츠 사건을 다루면서 만약 이때 쓰다의 칼이 좀더 깊게 들어가 니콜라이 2세가 사망했다면 [[대체역사물|이후의 역사가 어떻게 변했을지]] 잠깐 상상하는 대목이 있는데 니콜라이 2세의 동생 유리 대공이 황태자가 되어 후일 제위에 오르지만 원 역사처럼 1899년 병사하고 아랫동생 미하일 대공이 제위를 승계할 것으로 추정하면서 부인이 평민 출신이고 자유주의적 성향을 가졌던 미하일이 황제가 되어 [[피의 일요일]] 사건을 회피한다면 러시아 혁명을 피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추정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